막11:20-24/ 하나님을 믿으라 /조용기 목사
2014-09-08 17:33:14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을 믿으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감람산 언덕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주님이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제자들을 데리시고 감람산 언덕을 올라가시는데 시장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 무화과 단지가 있는데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잎이 무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혹시 그곳에 무화과 남은 것이 있을까 싶어서 제자들과 함께 길옆을 지나서 무화과나무 밑에 섰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아도 잎만 무성했지 무화과 열매는 한 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듣는 앞에서 장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이 무화과나무에서 사람들은 과실을 따먹지 못할지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무심히 예수님이 무화과나무 열매가 없으니까 속상해서 그렇게 말씀하셨나 보다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 다시 베다니로 들어와서 주무시고 그 이튿날 아침에 일찍이 또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그 무화과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베드로가 보니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렸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 어제 그렇게 싱그럽고 무성하던 무화과나무가 이젠 뿌리째 말라버렸습니다. 하도 신기해서 "주여, 주여, 주님께서 어제 저주하신 무화과가 말랐나이다." 그렇게 말하자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멈추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던지우라 하고 그 말한 것이 이룰 줄 마음에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다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신앙생활 중에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올 수 있는 위대한 법칙을 예수님께서 여기에 해설해 놓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생활 속에 전에 상상할 수 없던 그 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창조적인 생활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어떻게 하면 우리 생애 속에 기적을 가져오는 창조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 법칙을 한번 배워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적을 가져오는 기도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있나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올바른 자세로 하나님을 믿어야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빛을 지으신 하나님, 새들과 물고기를 지으신 하나님, 곤충들과 짐승을 지으신 하나님, 그리고 최후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좇아 사람을 짓되 남녀를 지으신 하나님, 이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손에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궁무진한 능력을 우리 배후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구원의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타락해서 하나님을 져버리고 자행자재해서 양같이 그릇 행하여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불의하고, 거룩치 못하고, 추악하고, 이제는 영원히 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저 방대한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모래알 같은 인간에게 무슨 관심이 있겠느냐고 질문을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사하신 하나님, 우리와 원수된 담을 헐고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연약과 질병을 청산해 주시는 하나님, 저주에서 벗어나고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게 하신 하나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내고 흑암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찬란한 천국의 영광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적대감정을 가졌거나 나쁜 감정을 가지시고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벼르고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에게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하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퍼붓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고 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해서 담대하게 나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창조주 하나님의 이 무궁무진하신 사랑과 구원의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뿐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아무 기적도 베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우리 가운데 기적을 베푸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인간의 힘으로 풀 수 없는 아주 얼기설기 혼란하게 된 실타래 같은 삶을 체험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손으로 이것을 올바르게 정돈해 보려고 해도 안됩니다. 이럴 때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나올 도리밖에 없습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되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무궁무진한 자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우리가 의지할 때 우리는 캄캄한 밤에 광명한 빛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기적을 원하는 사람은 이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이와같이 인간은 감각적이고 이성주의적인 세계 속에서, 기적이란 없다고 말하는 이 세계 속에서는 아무런 창조적인 역사도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답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눈에는 안보이지마는 그러나 안보이는 위대한 영적인 세계 속에서 눈에 보이는 만물을 지으신, 원천적인 힘이 되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내 아버지로 믿고 의지할 때 우리의 삶 속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에너지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힘이 고갈될 때 우리의 힘의 에너지의 원천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없이는 우리는 위대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원하신 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 에너지의 원천에 의지하고 난 다음에는 '이 산들에게 명하여 바다에 던지우라'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 모든 개인 개인에게는 태산과 같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 문제, 가정 문제, 사회 문제, 사업 문제 또 내가 창조적인 생활을 해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태산같은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고 시편기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항상 태산같은 문제들이 우리의 가슴을 짓누르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는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하나님의 에너지를 이용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난 다음에는 우리의 마음속에 이 산더러 저 바다에 던지우라고 하는 분명한 꿈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이와같은 영롱하고도 확실하고 분명한 꿈이 없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담을 그릇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마음속에 꿈으로 담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생을 살면서 삶의 목표도 없고 방향도 없고 성취의 꿈도 없이 바람 부는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내려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와같이 떠내려가는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에너지가 천지에 충만하게 있어도 이 사람을 위해서는 전혀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속에 삶의 목표가 있어야 됩니다. 그 목표에 따른 분명한 꿈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산을 바다로 옮긴다는 그 영롱하고도 분명한 꿈이 마음속에 태동해야 하나님께서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의 꿈은 우리 마음대로 꾸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엎드려서 하나님의 꿈을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개인 개인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에게 모두 다 예비하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이 얼굴이 다 다르고 성격이 다른 것처럼 그에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운명의 갈 길을 이미 주님께서 예비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분명한 목표와 꿈을 구하되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해야겠다는 간절한 꿈을 그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시아로 그 꿈을 따라 출발했지마는 하나님은 그 막대한 에너지로 그를 도와주지 않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바울이 아시아로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무리 아시아로 가려 해도 하나님의 그 크신 성령의 능력, 하나님의 창조적 에너지를 가지고서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아시아로 가려는 바울은 그 꿈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다른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비두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찬란한 꿈을 가지고 비두니아로 출발했지만 역시 하나님께서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꿈이었지 하나님이 원하는 꿈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위해서 정말 다른 길을 예비해 놓았는데 바울은 하나님의 예비한 꿈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드로아에 내려가서 밤중에 하나님 앞에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예비한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환상가운데 바다 건너 마게도니아에서 사람이 일어나서 손을 흔들어 초청을 합니다.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바울은 거기에서 비로소 자기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꿈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꿈을 받아들이고 그 꿈속에 온갖 정열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그를 도와주므로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게도니아로 건너간 이후 300년 이내에 그 거대한 로마제국을 회개시켜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도록 만드는 원천적인 복음 선교에 성공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꿈을 구하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꿈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이 원해서 예수께로 부르신 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놓고 계신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야훼 이레십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신 하나님을 우리는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꿈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자기의 고집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 무엇보다도 자기의 고집 때문에 망합니다. 이미 자기가 원하는 바를 마음에 딱 정해놓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눈을 막고 "하나님 내가 정해놓은 대로만 복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고함을 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정한대로 끌려가는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 마음속에 정한 고집을 깨뜨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고집을 하나님 앞에서 깨뜨려서 이것을 내어 던져 버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손해가 오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받아들이겠습니다.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뜻이면 내가 받아들이겠나이다.'는 이와 같은 겸허하고도 깨어진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난 다음 하나님께 엎드려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꿈을 내게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예비해 놓으신 그 꿈을 내게 허락하소서"

우리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기다릴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외 없이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를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시지 아니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한 꿈을 반드시 여러분의 가슴속에 영롱하게 보여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꿈을 받아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감추인 것을 밖으로 확실하게 옷을 입혀 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용이 분명하고 확실한 꿈을 마음에 가지면 그러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것을 입 밖으로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아무리 꿈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것을 입을 열어서 말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아직까지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을 담을 그릇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릇이 아직까지 화로에 들어 있고 구워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화로에 들어있는 그릇으로서는 물건을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아무리 영롱한 꿈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입술로 분명하게 말할 때 이것은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산출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미한 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확실한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마 그렇게 되겠지요.' 이것은 확실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도 무작정한 말인 것입니다. '그렇게 될런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불확실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산들로 명하여 바다에 던지라'는 확실한 말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꿈이 영롱하고 그 꿈에 대한 여러분의 계획이 확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입으로 분명하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분명하게 말할 때 비로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마음속에 꿈을 갖고 입술로 분명하게 말한 그 꿈과 그 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제 이와같은 꿈을 말하고 난 다음에는 우리가 마음속에 의심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이와같이 영롱한 꿈을 갖고 입술로 분명하게 말을 하더라도 마음속에 의심의 공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감각이 가져오는 의심이 우리를 좌절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처음 당하는 저항은 감각을 통한 환경적인 어려움인 것입니다. 나는 마음속에 영롱한 꿈을 갖고 분명히 말을 했지만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나의 환경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환경은 내 꿈을 정면으로 대결합니다. 내 꿈과 반대가 됩니다.

그래서 아침에도 반대되는 현상을 보고 점심 때 저녁 때도 반대되는 현상을 바라보게 되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꿈이 파괴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한 말의 분명한 고백이 사라지고 희미하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감각을 통한 환경적인 의심의 공격을 이겨내지 아니하면 우리 믿음이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 이것을 이겨내면 그 다음 둘째 고비로써 이성이 갖고 오는 의심이 있습니다. 믿음이 두 번째 당하는 저항은 바로 이성의 비판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공부하고 경험한 이 모든 것을 축적한 이성이 말합니다. "이건 비이성적이다.

비합리적이다. 이것은 안될 일이다. 생각해 보아라. 수판 놓아보아라. 그리고 경험을 비추어 보아라. 이 일은 반드시 안된다." 반드시 공격을 당합니다. 그래서 감각의 공격에다가 이성까지 손을 잡고 나를 집요하게 공격을 합니다. 그러면 그 공격 앞에 우리는 흔들거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내가 병이 들어서 의사가 이제는 살 수 없다고 말씀을 했는데 성경 말씀은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가 병고침 받은 분명한 영상을 가지고 나는 나았다고 입으로 시인합니다. 그러나 감각은 말합니다.

"너는 아직 아프다. 너는 아직 고통스럽다. 너는 아직 괴로움을 가지고 있다. 네가 나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런 거짓말하지 마라." 그렇게 말합니다. 육신의 감각적인 공격에 보태어서 이성이 말합니다. "이 사람아. 의학이 이렇게 발달됐는데 어디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병이 낫는단 말이냐?

이것은 수술을 받고 약을 먹어도 나을까 말까 한데 그래 막연하게 믿음으로 고친다니 이런 바보스러운 일을 어떻게 말하느냐. 그런 무식한 소리하지 마라." 이렇게 이성이 합세해서 공격을 합니다. 대개 이 감각과 이성의 공격 앞에 몰락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여기에 무릎을 꿇고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의심을 이기는 전쟁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의심을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린 의심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 이외에는 우리가 의심을 이길 수 있는 도리가 없습니다. 말씀으로만 감각을 대결하고, 말씀으로만 이성을 대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적인 지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푹 잠기면 그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믿음의 큰 자양분이 감각적인 의심과 이성적인 의심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 이외에 여러분 우리를 의심에서 건져줄 자가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 말씀을 멀리하는, 감각적인, 흥분적인 신앙이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첫째도 말씀, 둘째도 말씀, 셋째도 말씀을 연구하십시오.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말씀 위에 서십시오.

그리고 의심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과 교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감각적인 사회 분위기, 이성적이고 이지적인 분위기를 떠나서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대화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천국의 대기를 호흡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지 아니하면 그만 마음이 싹 식어져서 세상적인 생각이 마음에 싹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엎드려서 계속 기도하면 이 세상적인 장벽이 깨뜨려지고 훈훈하고 따뜻한 하나님의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어제 많이 기도했다고 오늘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매일같이 우리는 기도해서 우리에게 끝없이 다가오는 육신과 세상의 공격에서 이겨 하나님의 성령의 분위기 속에 들어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로 하여금 의심을 이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했습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속에 계시도록 하신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성령께 의지하며 성령이여 나의 의심가는 것을 없애고 믿음으로 도와 달라고 끊임없이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결정적으로 의심을 파괴하고 믿음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기정 사실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기도하고 구한 것을 받을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의심의 밥이 되고 맙니다. '받을는지 모르겠다' 의심을 말합니다. '못 받는다' 그러면 뭐 의심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의심에 시달립니다. 받을 때까지 의심이 계속해서 시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정 사실로 '이미 받았다' 이러면 의심이 박살나 버리는 것입니다. 이미 받아버렸는데 무슨 잔소리냐?

기도하고 구한 것은 이미 기정 사실로 만들어 버려라. 마음속에 이미 받은 것으로 만들어 버려라.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감각이 아무리 우리를 공격하고 이성이 우리에게 아무리 논리적으로 대결할지라도 거기에 대답하지 말고 기도하고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어 버리라. 이미 내가 소유해 버리고 말았다. 할렐루야! 주여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내가 이미 소유했사오니 더욱 복을 주시옵소서. 힘을 주시옵소서. 소유한 것을 더욱 소유하게 복을 내리어 주시옵소서. 아예 소유해 버리면 그 다음에는 의심이 와서 도저히 우리를 손 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 베드로의 체험을 통해서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밤중에 파도 이는 바다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예수님이 파도를 타고 걸어오시면서 베드로보고 걸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물위로 걸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기적과 이사를 믿지 않고는 안됩니다.

하나님 믿지 않고 사람이 어떻게 물위를 걸어갑니까? 베드로는 절대적으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에너지, 하나님의 기적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물위로 걸어간다는 목표와 그 분명한 믿음의 영롱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는 확실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가 배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제자들이 "못 간다. 이 밤중에 파도가 심히 이는데 너 갔다가 빠져 죽는다."고 할 때 베드로가 "나는 예수님께로 걸어간다."고 분명한 신앙고백을 그는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물위를 걷기 시작했으나 그 다음 의심의 희생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람과 파도가 치매 그만 예수님이 오라는 말씀에 서지 아니하고, 그는 말씀을 묵상하지 아니하고 바람과 파도를 바라봤습니다. 또 바람과 파도가 올 때 주님께 끊임없이 기도를 했다면 도움을 받았을건데 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는 나는 물위로 걸었으니 끝까지 예수님께 이미 걸어갔다고 자신을 가져 버렸으면 좋을건데 나는 못 걸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받은 줄로 믿지 않고 못 받은 줄로 믿었습니다. 나는 물에 빠져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물에 빠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역사라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올바른 법칙으로 사용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기적을 가져오지마는 우리가 그 믿음을 상실해 버리면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에게서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천국은 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 수많은 일들에 대해 기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체험을 못하는 것은 믿음의 법칙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간구합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기적적으로 에너지를 우리에게 공급하고 우리에게 역사해 주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 마음속에 영롱한 꿈을 가지십시오. 창조적인 영롱한 마음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말씀으로 표현하십시오. 여러분 입술로 분명하게 표현하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에 세 번째로 믿으십시오. 여러분 마음에 믿으십시오. 감각이 여러분을 공격해 올 때 말씀을 묵상하므로, 기도하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미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는 사실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십시오. 나는 이미 받아버렸다.

이미 나아버렸다. 이미 응답 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밖에 남은 게 없다. 감각과 이성은 논쟁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나는 그럴 시간도 없다. 나는 이미 승리해 버렸다.이렇게 해서 여러분께서 계속 받은 줄로 알고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따라 와서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네 믿음대로 기적이 일어나게 될지어다' 우리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위대한 창조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이 고개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운명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에너지가 이 우주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에너지인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와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우리는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여 믿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원하여 기도하오니 우리 주 예수께서 마른 무화과나무 밑에서 제자들에게 교훈하신 것처럼 이 교훈이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키게 도와 주시옵시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가져오게 도와 주시옵소서. 야훼 하나님이여. 오늘 우리는 각자 모두 다 분명한 마음의 꿈을 갖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 꿈을 분명하게 입으로 표현할 수 있게 확실성을 가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그리고 우리는 기도할 때 항상 이미 응답을 받았다는 것을 기정 사실로 기도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미 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미 받은 것을 더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의심이 들어올 틈을 주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러므로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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